●원정지 : 파키스탄 ‘낭가파르밧(8,125m)
●원정일정 : 2016.06,20~07.31(43일간)
●원정일정 : 인천 – 방콕 - 이슬라마바드 – 칠라스 – 할랄라브리치(1700m) – 세르캠프(2800m) - 베이스캠프(4200m) – 캠프1(4900m) - 캠프2(6100m) - 캠프1(4900m) - 베이스캠프(4200m) - 세르캠프(2800m) - 할랄라브리치(1700m) - 칠라스 - 이슬라마바드 - 방콕 - 홍콩 - 인천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봉)
“인샬라(Inshallah)” 아랍어로 ‘신의 뜻’ 이다. 파키스탄에 도착해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래서일까? 대자연의 순리에 거슬리기보다는 따라야했기에 하산을 결정하고 다시 내년을 기약했다.
3년 전(2013,6.22) 파키스탄 북부 낭가파르밧 베이스는 텔레반으로 추정되는 괴한에 의해 총격에 휩싸였다. 산악인을 포함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파키스탄 내 치안 유지의 허술함이 다시 한 번 집중 조명되는 사건이었다. 그 후 낭가파르밧 등정은 시간이 멈추었고 2016년 다시 재계되어 한국원정대를 포함한 외국원정대가 속속 베이스에 들어왔다. 예년에 비해 많은 원정대는 아니지만 한 달 전부터 외국원정대는 서밋을 도전하고 있었다.
파키스탄 낭가파르밧 봉(8,125m)은 ‘산의 왕’ ‘악마의 산’ 이라 불린다.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들은 대개 만년설에 덮여 있지만 낭가파르밧 봉은 예외이다. 가파른 절벽과 날카로운 능선 덕분에 눈이 많이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도 '벌거벗은 산'이라는 뜻의 낭가파르밧이다.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이 산은 코라코룸 산맥의 서쪽 끝 부분에 홀로 우뚝 서 있다. 옛날 독일 탐험가들은 이 산을 '살인하는 산'이라고 불렀다.
한국원정대도 1983년 처음 낭가파르밧에 발을 디딘지 현재까지 2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1990년 7월 故정성백 산악인과 2009년 7월 故고미영 산악인이 낭가 품에 영혼을 묻었다.
(故정성백 산악인과 故고미영 산악인 추모)
2016 김홍빈 낭가파르밧(Nanga Parbat) 희망원정대에 선발되어 히말라야 14좌 중 9번째로 높은 파키스탄 낭가파르밧(8,125m)의 원정준비를 끝내고 장도의 길을 떠난다. 내가 올라가야 할 낭가파르밧은 두려움의 대상일수도 있다. 고산병에 숨이 턱턱 막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포기할 수도 있다. 아님, 한 발 한 발 대딛다 보면 정상에 설수도 있다. 그렇게 산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에게 좌절도 기쁨도 줄수 있다. 그러나 나는 산에 대한 겸손과 미덕은 잊지 않을 것이다. 산에서 내 스스로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고 자신을 낮추며 겸손해 할 때 크고 아름다운 마음을 채워줄 것이다. 나에게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도전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 출국
6월20일 01:30분 우등고속에 몸을 싣고 인천공항을 향했다. 전날까지 분주하게 원정 짐을 쌓느라 재대로 개인준비물을 챙겼는지 모르겠다. 아빠 원정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전날 외박 나온 아들마저도 함께 얘기도 나누지 못하고 부대에 복귀했다. 한숨 잦나 싶었더니 인천공항이다. 새벽인데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파속을 헤치며 입국수속을 한다. 파키스탄은 항공기 짐 오버차지가 장난이 아니다, kg/3만원이다. 원정대 짐을 계산해보니 몇 백이 훌쩍 넘긴다. 힘들게 쌓았던 짐을 다시 꺼내 무게 줄이기에 한바탕 힘을 쏱고나니 탐승시간이 다가온다. 트렉스타 관계자와 기념촬영을 마치고 입국장을 빠져나가 면세점도 들리지 못하고 9시35분 타이항공에 몸을 싣었다. 방콕경유 이슬라마바드까지 비행시간 만 총 17시간 소요되었으며 방콕에서 대기 시간이 6시간이 남아 면세점에서 발마사지를 하며 시간 잡아먹기에 지루함 없이 보냈다.
(인천 국제공항)
● 이슬라마바드 도착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밤 10시쯤 도착했다. 한국과 시차는 4시간 늦어진다. 공항을 빠져나와 후덥지근한 더위는 앞으로 다가오는 원정 고행 길의 시작이었다. 공항에서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친절함에 갸우뚱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절이 아닌 공항에서 흔히볼수 있는 돈을 벌기위한 수단이었다. 공항과 시내 곳곳마다 무장한 군인들을 흔히 볼수가 있었고 호텔에 도착해서도 무장한 경비원들은 이곳 파키스탄의 치안 유지의 허술함의 단면을 읽을 수 있었다.
● 이슬람 라마다 기간
원정 길 이슬람의 최대명절 라마다 기간(6월6일~7월5일)과 겹치게 되었다. 크게 불편함은 없었으나 금식기간이라 점심, 저녁먹는데는 불편함이 있었다. 식당은 이용할 수가 없었고 점심은 개인적으로 사먹어야 했고 저녁엔 가까운 시장에서 현지 식으로 사먹어야 했다. 모든 이슬람인 들은 동트기 새벽4시부터 해질녘 6시20분까지 금식, 금욕을 하며 물 한 방울도 먹지 않는 생활을 한다. 그들은 이런 욕망과 싸운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래서일까? 기간 내내 사뭇 분위기가 조심스러웠다.
(시장에서 현지 식)
● 파키스탄 한국대사관 김인국 영사
방콕출발 이슬라마바드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만난 파키스탄 한국대사관 김인국 영사님은 원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다. 원정기간내내 자국민의 신변과 안전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개인적인 시간마저 할애를 해주셔서 파키스탄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었다. 원정을 마치고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해서는 귀한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원정대의 지루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저녁엔 외교관가가 밀집되어 있는 집까지 초대를 해주셔 잊지 못할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파키스탄 한국대사관 김인국 영사)
● 파키스탄 한국대사관 서동구 대사님 주최 세레나 호텔 만찬
김인국 영사님을 만난 인연이 원정전, 후로 뜻 깊은 자리가 마련되었다. 원정 2일째 현지 방송국과 언론사 인터뷰를 시작으로 이슬라마바드 세레나 호텔에서 서동구 대사님과 점심 만찬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호텔 입구부터 시작된 2중 3중의 상엄한 경비와 수색은 공항보다 더 완벽했다. 세레나 호텔의 아름다운 정원과 멋진 건축물, 그리고 곳곳에 장인정신이 깃든 인테리어는 전형적인 파키스탄의 문화와 전통이 어우러진 이슬람 건축의 상징이었다. 특히, 들어간 입구부터 천정과 벽, 바닥에 수놓은 디자인의 조화는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파키스탄 한국대사관 서동구 대사)
(세레나 호텔)
● 도심 엿보기(Monal Restaurant)
이슬라마바드에 제일 유명한 식당이다. 해발 1000m 넘는 마르칼라 산에 위치한 모날 레스토랑은 입구부터 고급스러움이 묻어 있다. 층층이 배치된 좌석은 대부분 예약이 되어 있었고 저희도 오후 방송국 인터뷰를 마치고 일찍 도착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어디서나 바라보는 이슬라마바드의 도심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밤 야경까지 볼수 있어 외국손님들이 방문하면 꼭 들리는 코스라고 한다. 음식도 고급스럽고 맛있지만 금주 국가라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다.
(이슬라마바드 마르칼라 산 모날 레스토랑)
● 이슬라마바드에서 칠라스
13시간~ 차량이 가는 길은 아스팔트 도로도 아니다. 그렇다고 울퉁불퉁 비포장 길도 아니다. 한없이 달리다 보면 길이 끊겨 우회하기도 하고 양떼들의 무리에 잠시 멈추기도 하고 꽃은 보이지 않은데 길가에 벌통은 왜 그리 많은지……. 진짜일까? 가짜일까? 몇 병 구매도 해본다. 운전사 곡예운전의 두려움 보다는 지칠 때로 지쳐버린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있었다. 창문사이로 비치는 또 다른 세상은 가끔씩 신선함도 주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칠라스 가는 도로)
● 칠라스
이슬라마바드에서 13시간을 거쳐 칠라스에 샹글리랄 호텔에 도착했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나름대로 구색을 갖추며 여기저기 호텔들이 눈에 들어왔다. 해질녘 호텔 앞으로 눈에 들어오는 인더스 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은 흙탕물처럼 탁해보였다. 유속이 빠르게 흘렀고 깊이는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곳은 카라코람하이웨이, 훈자, 낭가파르밧, K2 등 육로를 이용해 거쳐 가는 도시다. 칠라스는 암각화가 유명하다. 간단하게 말하면 커다란 바위위에 돌이나 금속들을 이용해 탑이나 부처 등을 정교하게 새겨놓은 모습은 이곳이 기원 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불교문화가 성대하게 펼쳐졌음을 말해준다. 지금은 불교유적지가 많이 파괴되고 없다고 한다. 아마 지금의 무슬림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칠라스)
● 인더스 강
잠에서 깨어 방문을 열고 칠라스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인더스 강은 새들의 합창소리와 함께 어울려 아침을 여는 소리가 아름답다. 야외 테라스에서 블랙티 한 잔의 여유로움도 즐겁다. 인더스 강은 인도의 3대 강으로 고대 문명 발상지로 유명하다. 길이만큼도 약 3,000km다. 파키스탄 히말라야 만년설이 자리 잡고 있는 산맥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강은 티베트 고원 서부에서 시작해 카슈미르, 파키스탄을 거쳐 아라비아 해로 흐른다. 1947년 영국령 인도가 분리하기 전 파키스탄은 인도국이었다. 인더스 강의 삶은 누구나 시대와 종교와 언어를 초월하여 인더스 강을 사랑한다.
(인더스 강)
● 4륜 지프의 곡예운전
칠라스에서 힐랄라브리치 까지 가는 4륜짚차의 곡예운전은 말 그대로 아찔했다. 몇 천 미터 되는 산 중턱에 짚차 한 대가 지나가기도 좁은 비포장 길을 만들어 위쪽으로는 낙석과 산사태 위험이 아래로는 빙하물이 흐르는 천 길 낭떠러지의 협곡이 1시간을 오르는 내내 간이 콩알만 하게 하였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위험천만한 길을 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운전수는 중간에 멈춰 수로에 흐르는 탁한 빙하 물을 떠서 마시고 난 뒤, 차량 증류수 보충을 한다.
● 거친 포터(짐꾼)
파키스탄 낭가파르밧 포터는 네팔 포터를 생각하면 안 된다. 거칠고 소 뿌사리(수송아지로 좌충우돌 하는 사람)처럼 말도 안 듣는다. 그들의 돌출행동에 많이들 황당했다. 현지 지방정부 조차도 다루기를 꺼려한다고 하니 짐작할만하다. 낭가베이스 포터는 힐랄라브리치에 도착하면 현지인을 고용해야 한다. 짐 무게도 일정해야 한다. 더 무거운 짐은 당나귀 몫이다. 힐랄라브리치에서 낭가파르밧 베이스까지는 보통 이틀이면 가능하나 원정대는 고소적응을 위해 3일정도 소요되기도 한다. 현지 포터를 고용해 짐을 맡기고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다. 40℃의 살인적인 더위와 맞서 오르다보면 중간에 하룻밤을 묵어야 할 세르캠프에 도착한다. 우리보다 먼저 간 포터들은 오간데 없고 몇 개의 짐만이 도착했다. 황당한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늦은 밤까지 기다리며 현지 가이드에게 화를 내도 소용없다. 포터들이 짐을 갖고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그래도 양심이 있는 포터는 아침에 오지만 결국은 베이스에서 만나게 된다. 분실된 짐은 없었지만 하산 때도 같은 일을 겪었다.
(현지 포터)
● 경찰경호
원정기간 원정대의 안전을 위해 현지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지내야 했다. 3년 전 베이스에서 등반가 사상자 발생이후 치안 유지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있다. 베이스에 1개 소대 병력이 주둔하며 밤에는 서치라이트와 순찰을 도는 모습이 볼 수 있다. 또한, 칠라스에서 출발해 베이스까지는 함께 동행하며 경호를 받아야 한다. 개인행동은 금물이다.
(현지 베이스 경찰)
● 베이스캠프
낭가파르밧 베이스캠프는 디아미르와 루팔쪽 두 군데가 있다. 시즌이 되면 모두 천상의 화원을 연출하며 등반가들을 맞이한다. 디아미르의 베이스는 해발 4,200m 으로 넓은 초원과 함께 앞으로 거대한 빙하가 흐르고 있다. 낭가파르밧 봉이 한눈에 보이며 베이스 주변에는 세계 등반가들의 추모비와 추모동판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맑은 날이면 낮에는 한여름을 방불케 하지만 밤엔 춥다. 원정기간내내 변화무쌍한 날씨에 비가 잦았고 밤엔 어름이 어는 날이 많았다.
(낭가파르밧 디아미르 베이스 캠프)
● 낭가파르밧 봉
힐랄라브리치에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되면 만년설의 낭가파르밧 봉(8,125m)을 바라보며 오른다. ‘악마의 산’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베이스까지 천상의 화원이 펼쳐져 몸과 마음을 힐링시켜준다. 히말라야 14좌 중 가장 아름다운 베이스가 바로 이곳 낭가파르밧이다. 아름다움 뒤에는 14좌 중 가장 힘들고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산이 바로 이 곳 낭가파르밧 봉이다. 낭가파르밧 봉은 온난화의 탓인지 예년에 비해 많은 눈이 녹아 있었으며 가파른 절벽과 날카로운 능선이 그대로 노출 벌거벗은 산이 되어 있었다. 원정 떠나기 전에 실화로 구성된 영화 ‘낭가파르밧 운명의 산’을 보았다. 주인공 라인홀트 매그너는 세계 등반기록을 갈아치우며 역사를 새롭게 쓴 세계 최고의 등반가다. 그가 잊지 못하는 산이 바로 이곳 낭가파르밧이다. 동생의 영혼을 묻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화원과 낭가파르밧 정상)
● 캠프1
베이스 구축 5일째 고소적응을 마치고 캠프1 구축을 위해 나섰다. 빙하지대와 크레바스를 통과하면 가파른 절벽아래 낙석지대가 나온다. 해발 4,900m 위치한다. 조금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상단에 외국원정대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한국원정대는 조금 아래 낙석이 흐르는 지대를 골라 바닥을 다지고 캠프1에 텐트1동을 치고 캠프2~4까지 올라갈 짐을 카고백에 대포해 놓고 베이스로 하산했다.
(원정 12일차 캠프1 구축)
(원정 33일차 피해복구 후 캠프1 재 구축)
● 캠프1의 낙석사고
캠프1 구축이후 날씨가 안 좋아 루트작업을 못하고 베이스에서 며칠을 보냈다. 전날 캠프1에 올랐던 외국원정대에서 소식을 전해왔다. 한국원정대 캠프가 산사태의 낙석피해로 완파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틀 전부터 원정대가 가려다 날씨땜에 미뤘던 차라 자칫, 감행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게 느껴진다. 다음날 셀파를 대동하고 캠프1에 올랐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캠프1은 완파되어 여기저기 장비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텐트 안에 대포시켜놓은 헬멧, 코펠이 깨지고 박살났다. 계속 날씨는 흐린 탓에 눈까지 내렸다. 다행이 많은 장비들을 다시 찾을 수가 있었고 심하게 망가지지 않아 다시 정비를 하고 베이스로 하산했다.
(캠프1 피해상황)
● 미완의 캠프2
캠프1 낙석사고 이후 다시 루트작업을 위해 나섰다. 순조롭게 진행된 루트작업은 캠프1 4900m을 통과해 캠프2 6100m 지점까지 돌파하였으나 예년에 비해 빨리 찾아온 우기와 하루에도 변화무쌍한 날씨에 우박처럼 쏟아지는 낙석은 캠프2 루트작업을 더디게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루트작업을 하던 대원과 셰르파(등반도우미)가 낙석에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두 대장은 대원과 셰르파의 안전을 최우선 생각해 현장에서 부목 등으로 응급조치 후 모두 베이스 하산, 철수 명령이 떨어지고 밤늦은 시간 무사히 베이스로 철수했다.
(캠프2 루트 작업)
● 심사숙고
원정 37일째, 한국에서 2명의 트래킹 방문단이 베이스에 도착했다. 정상등정에 맞춰 현장 취재차 오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대장은 밤늦게까지 회의 끝에 가장 힘든 철수명령을 하기로 한다. 캠프1을 구축하고 캠프2 루트작업 3번의 시도 끝에 대원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내린 용단이기에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김홍빈 대장과 김미곤 대장)
● 아름다운 등반
원정은 정상의 등정보다 더 아름다움은 실폐 후 철수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몇몇 등반가들은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대원들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등반을 감행했을 때 닥쳐오는 불운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 신의 뜻으로 치부해 버릴 때가 많다. 후퇴의 융단을 내린 두 대장의 결정은 대원들과 셰르파들의 안전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결정에 다시 한 번 존경과 그동안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해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 한국마켓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Embassy 호텔 내에 한국마켓이 처음으로 오픈했다. 한국인을 위한 마켓보다 중국 등 아시아권을 겨냥해 오픈한 것 같다.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해서는 오픈 전이라 준비 중이었고 원정 돌아오는 길에 모든 게 갖추어져 있었다. 한국식으로 마켓과 식당을 겸해서 운영하기 때문에 한국의 구수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파키스탄 발전소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삼부토건에서 운영을 하며 종업원은 현지인과 한국 매니저 한분이 일하고 있다. 가격대비 조금 비싸다고 느낄 수 있으나 파키스탄의 유일한 한국식당과 마켓이다.
(Embassy 호텔 내 한국마켓)
● 불교유적지 탁실라와 고대도시 시르캅, 이맘 바리 동굴
이슬라마바드 떠나는 날, 늦은 밤 비행기 시간으로 한국대사관 김인국 영사님께서 저희들을 위해 하루 가이드를 해주셨다. 이슬라마바드 인근에 위치해 있는 불교유적지를 관람하고 견문을 넓히기로 했다. 먼저 탁실라 박물관은 BC 260년경 아소카대왕이 불교를 제국의 공식종교로 정하고부터 그 시절 발굴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근처에 위치한 고대 계획도시 시르캅은 믿기지 않을 만큼 역사적으로 기원전인데도 정교하게 지어져 있음에 놀랬다. 점심 후에는 이슬람 성인인 이맘 바리 동굴을 다녀왔다.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길은 무더위와 싸워야 했다. 동굴 입구에 도착해서는 신발을 벗고 동굴입구까지 내려갔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낮선 이방인이 반가웠는지 모두 가까이 다가와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나는 손가락 하트모양을 가리키며 ‘아이러브유’ 라 외치며 응해주었다. 이맘 바리 동굴은 성인 한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비좁다. 몇 발자국만 들어갔다가 보고 다시 나와야 한다. 입구 돌들은 반질반질해 미끄러질 뻔 했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분이라면 추천하고 싶지 않은 동굴이다. 그만큼 들어가기가 힘든 동굴이었다.
(고대 계획도시 시르캅)
(이방인들을 보면 사진찍기를 좋아한다)
(이맘 바리 동굴)
(이맘 바리 동굴 입구)
● 귀국
늦은 밤,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한 티웨이 항공은 다시 방콕, 홍콩을 경유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예정시간보다 40여분 늦은 시간인데도 아웃도어 관계자와 블로그 지인 한산내기(김종철)님이 반갑게 귀국 환영을 해주었다. 다시 광주행 우등고속에 몸을 싣고 새벽에야 집에 도착했다. 고생했다는 가족의 인사가 미안함이 앞섰다. 수차례 원정갈때마다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은 가족이 고마울 뿐이다.
● 맺음말...
그동안 물심양면 지원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신 많은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 낭가파르밧 정상 서밋은 다음으로 미뤄졌지만 내년에는 꼭~ 성공할거라는 믿음으로 더 많은 성원과 격려부탁드립니다.
●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며…….
처음엔 버킷리스트로 시작했던 나의 꿈이 지금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죽기 전에 되돌아보면 후회되지 않은 삶이 될 것 같다. 아직도 나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도전을 위해 다시 계획을 세우고 열정을 불어넣을 것이다. 다음은 나를 찾아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800키로가 아닐까?
'´″’´°³о♡ 해외원정 > [파키스탄] 낭가파르밧 등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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